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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및 17개 시·도교원단체총연합회장들이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규탄 및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8.1.17 (사진=연합뉴스) |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2018년 1월 5일, 하윤수 당시 한국교원단체총연합(교총) 회장이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나쁜 정책이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무자격 교장공모 전면 확대 폐지’를 청원했던 일이 있다. 교총 회장이 청원한 것은 ‘자격증 없는 교장’이 아니라 ‘자격 없는 교장’이었다. 당시 전국에 1만 1,000여 개의 분회, 20만 명의 회원, 4,500명의 상근자를 둔 거대 교원단체인 교총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자격증 없는 교장’을 ‘자격 없는 교장’으로 표현하며 여론을 호도했을까.
사랑하는 자녀를 자격 없는 교장에게 맡길 학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사실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다. 교총의 논리대로라면, 전체 중등교육의 34.5%를 차지하는 사립학교의 70% 가까운 교장과 교감은 무자격자들이다. 자격증이 없으면 모두 나쁜 교장인가? 자격증이 있는 교장 중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학부모의 66%는 자격증 없이 공모를 통해 교장직을 수행하는 내부형 공모제 교장을 더 선호한다.
■ 민주주의를 체화해야 할 학교에는 학교자치가 없다
학교에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 민주주의를 체화해야 할 학교에 정작 학교자치는 없다. 학교의 법적 자치기구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유일하다. 학생회도, 교사회도, 학부모회도 법적 기구가 아닌 임의 단체일 뿐이다. 그 유일한 법적 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마저 학생 대표는 참여하지 못한다. 교사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 운영에 반영해야 할 교사 대표 자리에 교사가 아닌 교감이 앉아있는 학교도 수두룩하다. 물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운영위원회도 많지만, 형식만 갖춘 곳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은 학생인권조례에 발목이 잡혀 신체의 자유를 유보당하고 있다. 교장 자격증이 있어야 교장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독일은 '교장은 교사'라는 기조 아래 교사협의회가 교장 선출의 중심이 되고 학교자치위원회가 최종 승인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 역시 유능한 인재 유입을 위해 일정 수준의 교육 경력을 가진 교사들에게 교장 지원 자격을 준다. 중국에서는 별도의 교장 자격증 없이 교원자격심사위원회에서 교장을 임명한다.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병원장도 할 수 있고 변호사 자격증만 있으면 검사도 판사도 될 수 있는데, 왜 유독 교장만 별도의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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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교장 공모제 입법을 청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2.4 (사진=연합뉴스) |
■ 교장 자격증제는 폐지해야 한다
교장 자격증제는 폐지해야 한다. 전교조는 수십 년 전부터 학교 경영을 하는 교장은 자격증이 아닌 선출보직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같은 직장에서 가장 신뢰받고 존경받는 교사가 교장이 되어 학교를 경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교장 자격증을 얻기 위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뒷전으로 미룬다면, 이보다 더한 비극은 없다. 승진 점수를 모으기 위해 도서 벽지를 찾아다니고, 근무 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교장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온 사람이 교장이 된다면 과연 소신을 가지고 학교를 경영할 수 있을까?
전교조가 제안하는 교장선출보직제는 학교장이 가진 권한을 교직원회, 학생회,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회 등 학교 자치 기구에 배분한다. 교장은 학교 자치를 촉진하고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수업하는 교장'의 위상을 갖게 된다. 교육 경력 10년 이상의 교사라면 전체 교직원과 학생회 대표단으로 구성된 회의에서 선출하고, 학교자치위원회가 이를 승인하는 절차를 밟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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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들이 교원평가제 저지 및 학교자치 실현과 교장선출보직제 쟁취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5.5.11 (사진=연합뉴스) |
■ 교장자격증 없는 공모교장 도입과 교감직 폐지, 이미 시작되었다
2006년 5월 28일, 노무현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는 놀라운 결정을 내놓았다. 전국 364개 학교에 ‘교장 자격증 없는 공모 교장’을 도입하고, ‘교감직을 폐지’하며, ‘대교사제(수석교사)’를 도입하자는 파격적인 안이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2년간 지역교육청별로 2개교 이상, 총 364개교를 학교장 공모제 시범학교로 지정하고 2년 후 전국으로 확대한다.
공모제 학교에 한해 교감직 대신 교장이 임명하는 보직 형태의 부교장제를 둔다.
공모제가 적용된 학교에 대교사제를 도입한다.
■ 우리도 이제 교장선출보직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출된 학교장과, 수십 년 동안 점수 모으기로 살아온 사람 중 누가 더 자격 있는 교장이겠는가. 교장공모제 논란은 이제 그쳐야 한다. 교총은 ‘자격 없는 교장 반대’라는 꼼수를 중단하고, 어떤 사람이 교장이 되어야 더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자격증 하나로 군림하는 독선적인 교장이 아니라, 단위 학교 구성원들이 직접 교장을 선출하고 임기를 마친 교장은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는 교장선출보직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학교를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교육 공동체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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