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발생할 때 마다 듣게 되는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표현은 결코 지나친게 아니다.
경북 문경에 귀향, 카페를 운영하는 주민 김가영(가명)씨는 6월부터 국민신문고에 하천정비를 요청했지만, 담당자는 현장 실사도 나오지 않았고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말았다.
청소를 하려고 해도 "피해 실사 나올 때까지 그대로 두라" 말한 면사무소 고위급 직원은 "하천 정비해 봤자 넘쳤을 것"이라며 무책임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김씨의 기고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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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에서 발생한 폭우 피해 현장 (사진=본인 제공) |
이번 폭우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저도 피해를 입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사실 저의 피해는 어찌보면 지자체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일어난 것 같아서 너무 억울한 심정입니다.
저는 장애가 있는 딸을 둔 엄마입니다.
딸을 위해서 서울의 집을 팔고 80세 어머니가 평생 모은 돈에 은행 대출까지 더해서 경북 문경에 땅을 매입해 온 가족이 카페를 짓고 귀촌했습니다.
앞쪽은 카페, 뒤쪽은 저희 가족의 생활 공간의 구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카페를 만든 이유는 제 아이가 특수학교를 졸업하면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저처럼 장애 자녀를 둔 가족들이 맘 편히 찾아오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서 한적한 곳을 찾아 귀촌해 카페를 연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동생과 같이 사회복지사 공부도 해 가며 나름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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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후 드러난 카페 앞마당 (사진=본인 제공) |
그러던 중 작년 중부지방에서 집중호우가 일어났을 때 카페 바로 앞 하천의 수위가 오르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됐습니다.
때문에 올 6월부터 국민신문고에 "여름이 오기 전" 하천정비와 집중호우시 대비책을 부탁하는 제보를 했습니다.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렇게 민원 담당자가 정해졌지만 인사이동이 있었고 비가 온다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현장 실사도 나오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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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피해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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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전면부에도 물이 들어왔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본인 제공) |
그러다 이번 폭우가 닥쳤습니다.
2023년 7월15일 새벽 3시경 물이 집 앞 강과 도로까지 차올랐다는 옆집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카페 안쪽 창가로 가니 이미 강과 도로의 경계가 없어졌습니다.
저희는 카페 내부 뒤쪽 살림집에서 자고 있었기에 미쳐 알지 못했습니다.
물이 카페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딸과 노모를 깨워 2층으로 피신했습니다. 2층 테라스에서 밖을 보니 카페앞 도로와 잔디밭은 이미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는 잘 걷지 못하는데다가 나이 드신 어머니도 있어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119에 전화했지만 자동멘트만 나오고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무서웠습니다.
가까스로 지인에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 분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신 덕에 2층 외부계단을 통해서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속을 걸어 그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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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여전한 카페 공간 (사진=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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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이 밀려 들어온 카페 주방 (사진=본인 제공) |
밤새 걱정으로 잠도 못자고 아침에 카페로 다시 가보니 안은 온통 진흙과 오물로 가득했습니다.
기기가 모두 오염돼 영업은커녕 안에서 생활도 못할 정도입니다.
청소를 해보려고 해도 문경시에서 피해 실사를 해야 한다고 해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네요.
피해 실사라니요...
한달전부터 폭우가 올 경우 위험하니 현장에서 대비책을 마련해달라고 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서 귀촌한 저의 마음을 더 후벼판 것은 면사무소에서 나온 직원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하천 정비해봤자 넘쳤을 것이다”라고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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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이 가득한 카페 내부 (사진=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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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뒤편의 살림집에도 진흙이 가득하다 (사진=본인 제공) |
인구가 소멸하는 지방도시를 살리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고 귀촌해왔는데, 이곳 행정 공무원들의 태도는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재난 발생 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면장, 부면장, 여직원 등과 시의원까지 8명 이상이 다녀갔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잘 곳은 마련했는지" 묻는 이가 없네요.
미리 대비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행정 공무원들이 수습하는 일에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거라 믿음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호우로 생명을 잃은 분도 계시고, 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난 피해를 입으신 분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가족들은 언제 어떻게 수습될지 모르는 심각한 재산상의 피해도 입었고, 단란하게 키워가던 귀촌의 꿈을 현실의 벽 앞에서 잃고야 말았습니다.
그 새벽 지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카페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고립되는 사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생각에 잠도 편히 잘 수 없습니다.
행정처리도 제대로 안되고 위험을 감지하지도 못하고 민원에 대한 처리도 묵살하는 이런 지방에 귀촌한 것이 후회됩니다.
비가 더 온다는데, 또다른 피해까지 발생할까 두렵습니다.
직접 사정을 전한 김씨는 "혹시라도 이런 내용을 기사가 내보냈다고 불이익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미리부터 걱정하는 모습이다.
시사타파뉴스는 어떻게 재난이 수습되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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