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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홍진 감독이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호프'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7.6 (사진=연합뉴스) |
그간 본인의 의도나 의지와 관계없이 나홍진 감독은 로컬(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연출자가 되었다. 영화 '추격자'(2008)에서는 달동네를 연쇄살인범이 활개 치는 우범지대로 만들어 아파트 재개발 담론에 영향을 주었다. 영화 '황해'(2010)에서는 연변 지역을 조폭과 깡패, 살인범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인식하게 해 조선족 동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영화 '곡성'(2016)에서는 곡성이라는 행정명을 제목으로 사용해 지역을 괴물이 창궐하며 살인이 벌어지는 치안 부재의 공포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직도 곡성을 떠올리면 영화를 연상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은 만큼,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지역에 대한 인식까지 좌우하는 미디어의 강(强)효과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영화는 성공했지만 해당 지역은 결코 유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 '왕이 된 남자'처럼 지역과 상생하는 모델도 충분히 가능했을 텐데 말이다.
설마 이러한 지적을 의식한 것일까.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 '호프'는 이전 작품들과 다른 설정과 서사 전개를 보여준다. 특정 지역은 등장하지 않고 비무장지대 인근의 가상 마을인 '호포항'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영화 제목인 '호프(Hope)'와도 발음을 연결한 설정이다.
무엇보다 이전 작품에서 마을 사람들을 묘사한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과거에는 주민들이 파편화된 존재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가족이자 친구이며 선후배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수직적인 질서와 수평적인 협력이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름의 장유유서와 서열이 존재하면서도 공동의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병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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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호프' 스틸컷. 극 중 파출소장 범석(황정민)이 괴생명체에 맞서 긴장감 넘치는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 중심에는 파출소장 범석(황정민)이 있다. 그는 경찰이지만 호포항 출신으로 후배들을 이끌면서도 마을 어르신과 선배들의 조언을 존중하며 괴생명체를 퇴치하기 위해 애쓴다. 범석은 전형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있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도 하며, 실전 경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질책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능한 공권력의 상징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오인 사격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괴생명체의 정체와 사건의 원인을 하나씩 밝혀가며 퇴치와 구출 작전에 나선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역시 한 단계 성장해 나간다.
오히려 범석의 육촌인 성기(조인성)는 사냥과 낚시로 시간을 보내는 반백수에 불과하고 괴생명체를 돈벌이에 이용하려 하지만, 결국 끝까지 사투를 벌이는 반영웅적 캐릭터로 부상한다. 이는 사람을 단편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며, 지역 주민에 대한 인식 역시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인주의적인 사람도 위기 상황에서는 충분히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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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이 작품은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지역성에 대한 기존 구도를 뒤집는다. 흔히 SF 영화로 알려졌지만, 엄밀히 말하면 크리처물에 가깝다.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는 괴수처럼 강력한 전투력을 지녔기 때문에 일반적인 SF 영화로만 분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인상적인 점은 외계인을 고도의 문명을 가진 존재이면서도 괴수적 특성을 함께 지닌 존재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외계인 캐릭터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된 것은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외계인 황후 '조르'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수호 전사 '마베이요'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시녀 '아이도보르'는 테일러 러셀이 연기했다. 모두 모션캡처를 통해 실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때 이병헌, 주윤발, 이연걸 등 아시아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주로 악역을 맡았던 것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변화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PC)과 아시아 시장의 성장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할리우드 배우들이 한국 영화 속 외계 괴생명체를 연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K-콘텐츠의 위상과 700억 원 규모의 제작비가 만들어낸 변화이기도 하다.
또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이미 2편 제작도 예고되어 있다. 무엇보다 후반부로 갈수록 외계인들이 단순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선과 악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점차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다문화적 시각까지 확장되는 이야기 구조인 셈이다. 다만 이러한 결말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후속편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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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호프' 포스터 (제공=연합뉴스) |
그렇다고 이 영화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이야기 구조 자체는 비교적 단순하다. 외계인의 등장도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을이 갑작스럽게 습격을 당하고, 이를 막기 위한 추격과 총격전, 카체이싱과 말 타기가 쉼 없이 이어진다. 마지막에 거대한 모선이 추락하는 장면 역시 상당히 파격적이다. 결국 괴생명체 퇴치에 초점을 맞춘 오락영화인 만큼 공상과학영화라는 분류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아마도 여름 휴가철, 머리를 비우고 즐기기에 적당한 영화일 것이다. 그 이상의 해석은 과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위기 앞에서 서로 협력하고 공동 대응하는 공동체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외부의 위기가 과연 외부에서만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내부의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인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원인이 무엇이든 위기가 닥쳤을 때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의 힘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자세히 보면 외계 생명체의 난입과 관련해 이해되지 않거나 모순적으로 보이는 설정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의문들이 과연 2편에서 어떻게 해소될지 기대해 볼 만하다. 만약 설득력 있게 완성된다면, '호프'는 단순한 괴수 오락영화를 넘어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함의를 남기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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