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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어떤 프레임이 씌워지는가에 따라 분석과 논의 과정이 다르게 규정되는 경우는 잦다. '무섭노'에 관한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단어 끝에 '~노'를 붙이는 표현에 천착했기 때문에 본질을 놓쳤다. 대개 '무섭노' 자체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의 맥락과 흐름이 중요했다. 더구나 '무섭노'를 처음 언급한 것이 리센느 멤버가 아니라 제작 PD였다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본질이 보인다.
이를 위해 기본적인 관련 용법을 살피고 문제가 된 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보통 '~노'는 감탄형이나 자문형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사형으로 쓰이는 경우는 일베식이라고 규정한다. '안전하다.'라고 해야 하는데 '안전하노.'라고 말하면 일베식 어법이다. 여기에 인칭대명사가 앞에 있어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분명해진다.
"나는 지금 무섭다."라는 말을 "나는 지금 무섭노."라고 말하면 어법에 맞지 않는 일베식 표현이다.
'~노'는 대개 상대 의문문이나 자기 의문형에 쓴다. 의문문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설명 반어 의문문, 설명 명령 의문문, 설명 감탄 의문문 등이 있다. 설명 반어 의문문의 예로는 "누가 못 하겄노?"를 들 수 있고, 설명 명령 의문문에는 "인자 쫌 버리면 어떻겠노?"가 있다. 마지막으로 설명 감탄 의문문에는 "누구 코에 붙이노?" 혹은 의문사가 생략된 "뻐떡하먼 화내노?"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를 '무섭노'에 적용해 보면, 상대 의문문의 용례에서는 "너는 왜 이리 무서워하니?"를 "니는 와 이리 무서워 하노?"라고 말하면 맞다.
자기 의문형에 적용해 보면 "나는 왜 이리 무섭지."라는 말을 "내는 와 이리 무섭노."라고 하면 틀리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생략 현상이다. "내는 (와 이리) 무섭노."가 된다면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과 '왜 이리'까지 생략하면 "무섭노"가 된다.
그렇다면 이번에 문제가 된 콘텐츠의 내용은 무엇일까?
콘텐츠는 제작 PD와 함께 방안을 둘러보는 장면이다. 방안을 둘러보던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제작 PD : "여기 뭔가 덜컹거리는 소리 났는데."
"어, 뭐야."
리센느 원 : "뒤에서, 뒤에서."
제작 PD : "어우, 쒸."
"무섭노."
리센느 원 : "무섭노. 조명부터 무서운데..."
'무섭노'라는 단어를 "내는 와 이리 무섭노."라고 풀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무서운 상황은 아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상황이다. 낯선 공간에 들어간 인물들이 느낀 공포감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누가 먼저 '무섭노'라는 단어를 언급했는가이다. 문제의 영상에서는 남자 PD가 먼저 "무섭노"를 말했고, 리센느 멤버가 이를 이어서 말한다.
애초에는 제작 PD가 리센느 멤버에게 "너 무섭노?"라고 물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혼잣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리센느 멤버가 이를 그대로 따라 말한다. 애써 따라 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리센느 멤버는 덜컹거리는 소리 자체에는 무서움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PD는 덜컹거리는 소리 때문에 무섭다고 표현했다. 이를 표준어로 다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제작 PD : "여기 뭔가 덜컹거리는 소리 났는데."
"어, 뭐야."
리센느 원 : "뒤에서, 뒤에서."
제작 PD : "어우, 쒸."
"무섭다." 또는 "무섭네."
리센느 원 : "무섭다. 조명부터 무서운데..." 또는 "무섭네. 조명부터 무서운데..."
원인이 구체적이면 "왜 이리", "와 이리" 같은 호응 표현이 앞에 올 필요가 없다. 리센느 멤버는 무서움의 이유로 조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덜컹거리는 소리에는 전혀 무서움을 느끼지 못했고, PD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조명을 언급하며 맞장구를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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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가 유튜브에서 '와 이라노'라고 말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
PD는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관련 표현을 했을 수도 있다. 이를 알고 리센느 멤버는 분위기에 맞춰 공포의 구체적인 원인과 이유를 덧붙인 것이다.
이 상황에서 사용된다면 적절한 방언은 "와 이리 무섭노."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PD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안다면 "와 이리 무섭게 하노." 정도도 가능하다.
요컨대 이러한 표현에서는 제작 PD가 먼저 덜컹거리는 소리를 듣고 무서움을 느꼈고, 뒤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무섭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므로 "왜 이리 무섭노."와는 결이나 맥락이 다르다.
그런데 여기에서 결정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 애초에 리센느 멤버가 거제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프레임에 가려져 있었다.
이 대화에서 모두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무섭노'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많은 사람은 "무섭노"가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이 맞더라도 이 상황은 갑자기 방언을 사용할 만한 맥락이 아니다.
더구나 제작 PD는 특정 지역 출신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표준어를 구사하다가 갑자기 "무섭노"라는 단어를 쓴다. 그렇다면 이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흐름 속에서 '~노'가 등장했기 때문에 일베식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리센느 멤버의 "조명부터 무서운데..."라는 말도 방언으로 이어졌어야 자연스럽다. 이러한 표현 상황은 충분히 일베식 표현이라는 의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노노 게임'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런 대꾸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 우선 제작 PD부터 일베식 표현에 오염되어 있었고, 리센느 멤버는 즉흥적으로 따라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냥 "어우 무서워.", "무섭네."라고 표준어를 사용했어야 한다. "무섭노"라고 할 맥락적 이유가 없다.
일부 전문가는 감탄형으로 "무섭노"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왜 갑자기 방언으로, 그것도 잘 쓰지 않는 감탄형을 선택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역 방언 생활과 거리가 있는 젊은 PD가 사용했다는 점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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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당 용법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한 MBC 경남 김현지 피디의 인스타그램 캡처 |
언론 매체에서 제시하는 사례들도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는다. 예컨대 국립국어원이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가 언론에 소개됐다. 지난 2006년 국립국어원 조사 자료에는 경남 창녕의 72세 화자가 표준어 "한 오십 년 넘었나."를 "한 오십 년 넘었노."라고 표현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화자는 확실하게 50년이 넘었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한~"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는 '대략'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확신이 아닌 자기 의문의 뉘앙스가 살아 있다. 따라서 완전한 확신을 나타내는 동사형 용례라고 보기 어렵다.
어느 언론에는 주민 사례도 소개됐다.
한 거제 주민은 "내가 무서움을 많이 탄다."며 "그럼 주변에서 '뭐가 무섭노' 그 소리를 잘한다."고 설명했다.
많은 언론은 "무섭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춰 주민들에게 묻는다. 당연히 주민들은 사용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가"와 "무섭노"처럼 호응 관계가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제작 PD와 리센느 멤버의 "무섭노"와는 다른 사례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제시된 사례들이 대부분 70~80대 화자의 사례라는 점이다. 리센느 멤버는 2004년생이고 제작 PD 역시 90년대생 정도일 것이다. 즉 모두 20~30대다.
감탄형 "무섭노"는 70~80대에서도 흔하지 않은 표현인데, 이를 건너뛰어 20~30대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가 중세국어를 끌어오거나 희귀한 용례를 제시하는 방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례를 비교하고 판단해야 한다.
더구나 젊은 세대는 지역 어르신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언어를 배우는 것이 현실이다. 그 미디어는 온라인 플랫폼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은 방언을 사용하는 대화 속에서 '~노'를 사용한다는 점도 다르다. 즉 방언이 중심인 대화 속에서 "무섭노"가 나왔다면 일베식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사례를 더 보자. 7월 9일 가수 겸 배우 비비의 SNS 표현이 화제가 됐다.
"왜 이래 힘드누..."
그는 그냥 "힘드노"라고 하지 않았다. "왜 이래"라는 호응 표현을 함께 사용했다. 이러한 예가 상식적인 수준의 화용법이다.
여기서 길게 분석하는 이유는 젊은 PD나 리센느 멤버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베식 표현의 영향을 받는 현실에서 그들 역시 하나의 희생양일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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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픽사베이) |
작금의 상황은 일베가 가장 반기는 상황이다. 조롱과 희화화의 용법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즐기고 있다. 일베식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세대를 일베로 몰아가는 것 역시 그들이 원하는 결과일 수 있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갈라놓고 분열시키기 위한 술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일베식 표현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이는 공공영역에서 플랫폼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더구나 학교 현장에서도 이에 대한 대응이 부재했다. 근본적으로 정치 역시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정파적 접근에 머물렀다.
따라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리센느 멤버가 일베냐 아니냐가 아니라, 일베식 표현을 어떻게 필터링하고 줄여 나갈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모색이다.
하지만 일부 정파는 '~노' 같은 표현이 혐오 표현이라는 점조차 인정하지 않은 채 정략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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