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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마오쩌둥 탄생 103주년을 맞아 기념당 참배하는 중국 지도부 (사진=연합뉴스) |
1955년 여름, 쓰촨성의 한 농촌 마을을 시찰하던 중국 국가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은 날아가는 참새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저 새는 해로운 새”라고 말했다.
주석의 교시(敎示)를 허투루 넘길 수 없었던 관리들은 해로운 동물들을 퇴치하는 방안을 강구, 1958년부터 이른바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을 벌였다. 쥐, 참새, 모기, 파리의 4종류 동물을 박멸하자는 운동이었다.
이중 참새 박멸 운동은 따로 ‘타마작운동(打麻雀運動)’이라고 했다. 이 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어 중국 전역에서 참새가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대신 참새의 먹이였던 벌레들이 창궐했다. 농작물에는 이 벌레들이 참새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중국의 농업 생산량은 급감했고,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이 일은 사안의 우선순위를 잘 알지 못하고 지시하는 독재자, 독재자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관료 집단, 관료 집단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순종적 대중이 결합하면 얼마나 참혹한 결과가 생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자주 거론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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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시절 올라온 법무부 유튜브 썸네일 (사진=연합뉴스) |
2022년 10월 13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마약과의 전쟁’을 지시했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검찰은 본디 ‘범죄’와 싸우는 정부 기구다. 그런데 하고많은 범죄 중에 왜 굳이 ‘마약’을 거론했을까?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에 ‘실적주의’의 희생자가 되었던 수많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떠올랐다. 앞으로 억울하게 마약 혐의로 잡혀 들어가는 사람이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마약과의 전쟁’ 선포 1년이 지나도록 검찰은 국민들에게 내세울 만한 ‘전과(戰果)’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전쟁 선포 보름쯤 뒤에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는 ‘경찰이 마약 사범을 적발하는데 치중하여 인명 구조를 등한시했다’는 등의 소문이 세간에 떠돌았다.
법무부 장관이 독촉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일선 수사 담당자들이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한동훈 씨가 어디 보통의 법무부 장관인가? 현 정권의 2인자이자 후계자로 지목되는 사람이다. 그에게 잘 보이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향후 승진을 좌우하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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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전 3번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한 고 이선균 씨 (사진=연합뉴스) |
아니나 다를까, 2023년 10월 드디어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실적’이 발표됐다.
수사기관이 영화 ‘기생충’으로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 이선균 씨를 마약 투여 혐의로 조사중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이어 역시 유명 연예인인 지드래곤도 마약 혐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
대중의 관심이 새삼스럽게 마약으로 쏠렸다. 하지만 수사 결과 두 사람의 마약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선균 씨의 경우 여러 차례 약물 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음성이었다.
애초에 마약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으니, 여기에서 ‘혐의없음’이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경찰은 윤석열 정권 검찰이 즐겨 쓰는 방법을 답습했다. 별건 수사와 언론을 이용한 망신주기가 반복되었고, 배우 이선균 씨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와 계약한 광고주 처지에서는 손해 배상을 청구할 만도 했다.
이선균 씨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선균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구체적 동기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평생 자살 문제를 연구한 프랑스의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는 ‘자살은 인류가 영원히 해명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죽은 사람에게 물어볼 방도도 없고 그가 후회하는지 아닌지 알 도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린 과정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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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씨 사고 현장에 집결한 기자들 (사진=연합뉴스) |
피의사실 사전 공표,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주기,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생활 폭로 등은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검찰 수사에서 늘 반복된 일이었다.
증거를 찾지 못했으면서도 어떻게든 실적을 올리려고 이선균 씨를 몰아붙인 경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선균 씨의 주장은 외면하고 경찰의 발표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한 언론이 ‘사회적 살인범’이다.
특히 마약과 무관한 사생활 문제까지 끌어대어 이선균 씨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데 앞장 선 언론은 ‘주범’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선균 씨가 죽자, ‘주범’들이 모두 자기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언론의 무절제한 보도를 탓하고, 언론사들은 다른 언론사를 탓한다.
마약 혐의와 관계없는 이선균 씨의 극히 사적인 대화 내용까지 공개했던 언론사 중 이선균 씨와 유족에게 사과한 곳은 단 하나도 없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단조차 ‘개인정보’라며 공개하지 않던 그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언론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마오쩌둥이 지시한 ‘참새와의 전쟁’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참새가 죽었고, 그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마오쩌뚱과 그 부하들은 이 일에 대해 공개 사과하지 않았다.
언제나 검찰 편을 드는 한국의 자칭 보수 언론들은 이선균 씨의 죽음이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 있다는 이야기를 ‘정치적 선동’으로 치부한다.
그렇다면 이선균 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은 도대체 누가 져야 하는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을 얼마나 더 만들 작정인가?
여기가 1950년대의 중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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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기사 화면 캡쳐) |
이선균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그날, 어떤 언론매체에는 “뱃살 하나도 없네...한동훈처럼 50대에도 늘씬한 아재 되려면”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선균 씨의 유족이 이 기사를 봤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연옹지치(吮癰舐痔)’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종기의 고름을 빨아주고 치질 걸린 항문을 핥아준다’는 뜻이다.
한동훈 씨를 한국 50대 남성의 육체적 모범으로까지 추켜세우는 언론의 더러운 행태를 묘사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고사성어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양심이 무너지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듯하다.
한국 기자들은 도대체 뭘 얻으려고 이렇게 비루하고 더러운 지경으로까지 타락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건 비루한 아첨꾼들의 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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