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팬덤 정치’ 비판, 노사모까지 싸잡아 매도하나...문제는 ‘사유화된 정치 팬덤’

문제는 팬덤 자체가 아니라 권력을 좇는 ‘사유화된 정치 팬덤’이다
▲ 노사모 (사진=노무현 사료관)

강준만 전북대학교 명예교수가 최근 『팬덤이 약탈한 정당』이라는 신간을 냈다. 강 교수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가장 위험한 위기를 ‘팬덤 정치’라고 규정한다.

그는 팬덤 정치를 단순한 정치적 일탈이나 해프닝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구조적 파탄으로 본다. 팬덤 집단은 정치적 실세가 되었지만, 그 주도권은 과격성과 광신의 농도가 짙은 소수가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 팬덤은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완전히 장악하고, 의회의 입법 및 정책 결정 과정까지 거센 압박으로 좌우하는 패권적 행태를 노골화하고 있다. 국가의 미래나 정책의 성공 여부에는 눈을 감은 채 종교집단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미래보다 과거에 집착하고 공정과도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들 욕망의 본질은 단순한 정치인에 대한 애호가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일종의 ‘권력 감정’에 가깝다. 정당은 팬덤의 눈치를 보느라 합리적인 타협과 대화의 공간을 스스로 지워버렸고, 결국 민심을 수렴하는 공공의 장이 아니라 특정 팬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하부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강준만 교수는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1965)으로 유명한 맨슈어 올슨(Mancur Olson·1932~1998)의 도적 개념, 즉 ‘유랑형 도적(Roving Bandits)’과 ‘정주형 도적(Stationary Bandits)’을 가져온다. 지금의 팬덤 정치를 유랑형 도적에 비유한 것이다.

맨슈어 올슨은 「독재와 민주주의의 역학」(Dictatorship, Democracy, and Development, 1993)과 『지배력과 번영』(Power and Prosperity, 2000)에서 지배 권력의 형태를 유랑형 도적과 정주형 도적으로 구분했다. 사실상 ‘지배자’ 또는 ‘통치자’를 ‘도적(bandit)’으로 묘사한 것이다. 유랑형 도적은 무정부 시대의 약탈자를, 정주형 도적은 독재자(autocracy)를 뜻한다.

유랑형 도적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을 착취하고 토대를 파괴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말 그대로 약탈 도적이다. 반면 정주형 도적은 미래를 생각해 사람들을 보호하고 세금을 낮춰주기도 하며, 질서를 유지하면서 두고두고 이익을 챙기기 위한 권력을 구축한다. 강준만 교수는 한국 사회가 기존의 ‘팬덤 독재체제’에서 벗어나 ‘팬덤 자유경쟁체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정치 팬덤이 ‘도적 떼’인가


강준만 교수의 지적은 맞는 면이 있다. 그러나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결론은 다르게 도출될 수 있다. 팬덤 정치라는 현상을 무조건 도적 떼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옥석을 구분하려는 노력 없이 팬덤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는 것이 과연 학자의 분별력에 부합하는지도 알 수 없다.

팬덤 자유경쟁체제로 나아간다고 해서 시장주의 원리에 따라 저절로 해법이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팬덤에도 본질과 원칙, 가치관이 있는 법이다.

연예인이나 스타에게서 출발한 팬덤에 대해서는 애초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팬 문화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무조건 맹신하는 종교적 수준을 넘어 건강한 비판과 제언도 함께하고 있다. 예전처럼 경쟁자를 공격하고 비판하며 음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일도 크게 줄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K팝 팬들이 결성한 ‘Kpop4Planet’은 K팝 산업이 환경오염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관련 입법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아티스트의 활동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힘을 보태는 것이다.

아티스트와 함께 불우이웃을 돕거나 재난 현장에 기부하고,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에도 동참한다. 인류는 물론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실천에 나선다. 아티스트와 팬덤이 함께 성장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세계적인 명성도 함께 얻게 된다.

무조건 밀어주고 끌어주는 행태는 근시안적이며, 결국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K팝 아이돌이 단명하지 않고 오랫동안 활동하는 것도 이 같은 아티스트와 팬덤의 활동이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 노무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제16대 대통령 후보였던 2002년 12월 18일의 용산전자상가 앞 유세. (사진=연합뉴스)


정치 팬덤의 원형, 노사모는 달랐다


이러한 팬덤의 양상은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2000년 ‘노사모’에서 나타났다.

한국 정치사에서 국내 최초의 정치인 지지단체이자 정치인 팬클럽은 2000년 결성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즉 노사모로 평가된다. 노사모는 ‘노무현 팬클럽’을 표방하며 출발했지만 단순한 팬덤의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노무현이 지향했던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적 야합 거부 등 정치 구태를 벗어나려는 원칙과 실천력에 대한 지지였다. 더구나 노사모는 그 태도도 달랐다. 서갑원 전 의원이 언급했듯이 노사모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노사모는 상대 후보를 비방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노무현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공감을 얻는 데 힘을 쏟았다. 이러한 태도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소 철학과도 맞닿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할 때는 반대 운동보다는 적극적인 찬성이나 지지 운동이 바람직하며, 거부나 반대 운동은 비도덕적인 행위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02년 8월 19일 민주당 내부에서 후보 교체나 단일화 주장이 나오자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모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듭 호소드립니다. 감정이나 자존심을 누그러뜨리고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상대방을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와 무관하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해도 그렇게 잘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규탄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감정이 상하면 쉽게 풀릴 문제도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설득해 나가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저와 여러분들이 뜻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정의를 외치는 몇몇 사람이 나머지 모든 사람을 꾸짖어가면서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며칠 전 민주당 중앙당사 앞 시위를 멈추어 달라는 저의 호소를 기꺼이 받아들여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듯이, 노사모는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격한 방식의 행동을 자제했다.

지지자들에게 이처럼 자제를 요청한 대통령은 지금도 찾기 어렵다. 선을 넘는다면 자신의 팬클럽에도 할 말은 했던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대화와 공감이라는 대원칙이 있었다.

더구나 노사모는 노무현을 무조건 맹목적으로 절대화하지도 않았다.

2002년 4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뒤 노 전 대통령이 “여러분은 제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자, 노사모 회원들은 “감시”, “감시”라고 대답했다. 이는 정치인과 지지자 사이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의미했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분 말고도 흔들 사람이 꽉 있다”면서 “감시도 하고, 흔드는 사람들도 감시해 달라”고 했다. 무조건 자신을 지지하거나 감싸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6월 노사모 창립기념 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통해 “여러분을 믿고 옳은 일이면 과감하게 맞섰고, 부당한 저항에 대해서는 정면 돌파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사적인 정치나 권력의 확장을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개혁 원칙에 따라 국정을 운영했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떳떳하게 밝힐 수 있었다.

2003년 3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노사모가 대선 당시 나를 지지했다가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별수는 없다”고 말한 것도 근본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정치 팬클럽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을 겪었지만 노사모와 노무현은 한 번도 완전히 분리되거나 결별하지 않았다. 진정성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공적 가치에 결속돼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에서 “노사모는 노무현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든 모임”이라며 “임기를 마치면 노사모가 될 것”이라고 했다.

노사모는 노무현 개인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모임이기 때문에, 자신도 그러한 원칙 아래 그 일원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팬덤이 아니라 ‘권력의 사유화’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완성이라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러나 노사모 이후 팬덤 정치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보면 오히려 퇴행해 왔다.

개혁을 향한 지향과 명분, 민주주의의 원칙과 과정은 사라지고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옹위와 과격성만 남으면서 노무현 정신과 정치 팬클럽의 기본 질서마저 무너뜨렸다.

민주적 가치관과 진보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동의와 숙고, 책임 의식과 다짐의 과정 없이 무조건 외연만 확장하는 것은 오히려 근본적인 가치를 지지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을 위태롭게 만든다.

정치 팬덤의 관심이 공적 가치보다 권력의 재편과 획득에 맞춰져 있다면, 상대에 대한 극렬한 공격과 음해·비방부터 시작될 것이다. 심지어 ‘라이트’가 ‘코어’를 파내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팬덤이 권력의 중심에 서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 잘못된 영향력을 떼어내야 한다.

그것은 진일보해 온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퇴보다.

그들이 신화화하는 팬덤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준만 교수가 비판한 대상은 오늘날의 건강한 K팝 팬덤보다도 후진적인, 팬덤을 빙자한 사유화된 우중 정치일 뿐이다.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들은 팬덤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가치마저 위협하고 훼손하는 행태에 분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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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헌식 박사 / 2026-08-15 09: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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