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제 '교과서 없는 수업'을 하자...교사는 교과서만 가르치는 사람? [김용택 칼럼]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수업'이 진정한 교육
- 교사는 '삶의 안내자'가 되어야...교과서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 경기 수원시 매산초등학교 3학년 1반 교실에서 개학을 맞은 아이들이 새로 받은 교과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25.8.20 (사진=연합뉴스)

“우리도 이제 교과서 없이 수업하자!”

이런 소리를 하면 대부분의 선생님은 펄쩍 뛸 것이다. “교과서 없이 무엇을 가르치란 말인가?” 하고 말이다. 교과서가 없어지면 정말 가르칠 것도 없어지는가?

 

“무엇을 가르칠까?”를 고민하는 것. 그것도 동료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집단지성으로 학습 과제를 함께 찾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교실에 앉아 칠판의 판서나 베끼는 수업보다 훨씬 살아 있는 교육이다.


선생님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일곱여덟은 ‘교사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해방 이후 대부분의 세월을 국정교과서를 가르치는 데 이력이 나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가르치고 그 내용을 일제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을 통해 암기하기를 반복해 왔으니 당연한 반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기만 하는 사이는 아니다. 국정교과서에 길들여진 많은 교사가 스스로를 ‘교과서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 교과서란 무엇인가


교과서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은 교과서를 “학교에서 교과과정에 따라 주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편찬한 책”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교과서는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자료’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시험 점수로 교육의 성과를 판단하는 현실에서는 교과서가 성경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신성시하는 그 교과서는, 일제가 조선인을 일본 신민(臣民)으로 만들기 위해 이용했던 통제의 도구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국정교과서, 교육부의 검정을 받은 검정교과서, 교육부의 인정을 받은 인정교과서로 나뉜다. 2020년부터는 검인정 심의를 거치지 않는 자유발행제 도입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아직 오리무중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국가가 정해준 지식만이 담긴 국정교과서를 가르치고 배워왔다. 다시 말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원하는 인간을 길러 온 것이다. 설령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도입된다고 교육 선진국이 될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교육 혁신이 성공하려면, 획일적인 입시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 교과서 없이 수업하는 나라들


세계에는 교과서 없이 수업하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핀란드, 덴마크, 호주, 스웨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국가 차원에서 교과서를 발행하지 않고, 학교와 교사가 교육과정 편성과 수업 운영에 완전한 자율성을 갖는다.


핀란드의 국가 교육과정은 큰 틀에서 목표만 제시하고, 교사는 학생들의 흥미와 수준에 맞춰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다. 덴마크는 교과서 대신 신문 기사, 시, 그림 등 다채로운 자료로 토론과 발표 중심의 수업을 진행한다. 호주 역시 학교와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운영하며, 스웨덴에서는 교사가 자신의 교육 철학에 따라 교과서를 선택하거나 직접 교재를 만들어 가르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선생님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교과서를 빼앗아 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에는 시원해할지 모르지만, 며칠이 지나면 교실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지 않을까? 교육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선생님이 교육과정에 따라 직접 가르칠 내용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학기 초에 짜는 교육계획조차 교과서가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데, 그 교과서가 사라진다면 말이다.


■ 교과서가 없으면 정말 교육이 멈출까?


태극기 다는 법의 의미를 칠판에 적고 암기하는 것과, 학생들이 조를 나눠 일제강점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스스로 조사해 발표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애국심을 길러줄까? 졸린 눈으로 판서를 베끼는 것과, 어떤 조는 유관순 열사에 대해, 어떤 조는 광복군에 대해, 또 다른 조는 강제징용 끌려간 할아버지에 대해 조사하여 슬라이드나 동영상으로 만들어 발표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가슴 뜨거운 역사를 배우게 할까?


민주주의의 원리를 칠판에 적어 외우는 방법도 있지만, 학급회의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지방의회 견학을 통해 몸으로 배울 수도 있다. 태극기를 달고 애국가를 외운다고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 의식은 가정과 학교, 사회 현장에서 보고 배우며, 동아리 활동 같은 실천을 통해 체화되는 것이다.

 

▲ (이미지=시사타파뉴스, 뤼른)

■ 교사와 교육자는 다르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덧셈 뺄셈과 구구단, 중·고등학교 내내 외우기만 했던 국사, 졸업 후 한 번도 써먹지 못한 함수와 물리 공식들…. 나는 그런 지식의 전달만을 받으며 학창 시절을 다 보냈다. 그 수많은 선생님 중 왜 단 한 분도 내 삶의 안내자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학교생활 내내 교과서 진도만 나갔을 뿐, 제대로 된 진로 상담 한번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삶을 안내하지 않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삶을 안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전공 분야 지식을 오만할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사람. 더 많은 지식을 암기시키는 것이 교사의 책무라고 굳게 믿는 사람. 자신이 배운 지식, 그 교과서라는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폐쇄적인 사고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살아갈 아이들의 삶을 안내할 수 있을까.


■ 교과서 수준의 삶은 행복할까?


모두에게 똑같은 것, 선택의 여지 없이 가르치기만 하는 학교. 장차 정치인이 될 학생도, 종교인이 될 학생도, 교사나 기자,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갈 학생에게까지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교과서 없이,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국어, 영어, 사회, 미술, 음악 선생님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가르치면 안 될까? 선생님은 국가가 정해준 것만 가르치고, 아이들은 교과서 수준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면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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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택 위원 / 2025-08-24 0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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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밤바다님 2025-08-24 20:45:22
    '모두에게 똑같은 것, 선택의 여지 없이 가르치기만 하는 학교. 장차 정치인이 될 학생도, 종교인이 될 학생도, 교사나 기자,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갈 학생에게까지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완전 격공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칼럼 잘 봤습니다
    김용택 위원님 늘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유익한 칼럼 잘 부탁드립니다~^^
  • 날이 좋아서 님 2025-08-24 10:16:30
    참 좋은생각 같아요.
    한편, 걱정도 생겨요.
    교사가 매국사관(뉴라이트)을 가지고 있다면...끔찍합니다. 임용시 사상검증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공..
    위 언급 된 나라들은 식민지배를 받지않았던 것 같아요.
  • 만다라님 2025-08-24 09:50:41
    대한민국도 스웨덴처럼 교사가 직접 교재를 만들거나 선택할 수 있다면 정말 다양한 교육을 학생들이 받을 수 있겠네요
  • 만다라님 2025-08-24 09:48:27
    교과서가 없는 수업을 하자는 재목을 보고 그럼 공부는 어떻게 뭘로 하나 생각이 스쳤네요
    그리고 교과서가 일제의 산물이라는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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