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버리고 세력 확장에 몰두한 토니, 내부 붕괴로 파멸
외연 확장보다 조직의 가치와 내부 신뢰를 먼저 다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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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년 개봉한 하워드 호크스 감독의 ‘스카페이스’와 1983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재해석한 동명의 작품. 두 영화는 시대와 인물 설정은 다르지만 권력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의 파멸을 공통으로 그린다. (이미지 편집=시사타파뉴스) |
최근의 정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함의가 있다는 점에서 영화 ‘스카페이스’(Scarface)가 새삼 추천되고 있다.
‘스카페이스’라고 하면 대개 1983년 알 파치노 주연의 작품을 떠올린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자료도 대부분 알 파치노가 주연한 ‘스카페이스’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원작이 따로 있다. 1932년 하워드 호크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스카페이스: 국가의 수치’다. 알 카포네(Al Capone)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며, 이 영화 역시 아미티지 트레일(Armitage Trail·본명 모리스 쿤스)의 동명 소설에 토대를 두고 있다.
‘스카페이스’는 알 카포네의 별명이다. ‘스카’(scar)는 흉터를 뜻하므로 스카페이스는 말 그대로 ‘흉터가 있는 얼굴’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알 카포네의 얼굴에는 흉터가 있었고, 영화에서는 이를 더욱 크고 뚜렷하게 표현했다.
1983년 작품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 토니 몬타나의 얼굴에도 흉터가 있다. 흉터는 그가 살아온 폭력적인 세계와 갱스터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식과도 같다.
그러나 1932년작과 1983년작은 여러 면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1983년 작품은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감독하고 올리버 스톤이 각본을 맡았다. 기본적인 서사 구조를 제외하면 사실상 원작을 대폭 재해석한 작품이다.
1983년작은 초반부부터 쿠바 난민과 미국 사회의 이민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다. 이 과정에서 올리버 스톤의 관점도 읽을 수 있다. 국가, 특히 범죄 척결을 담당하는 경찰의 시각은 거의 배제한 채 범죄조직 내부의 갈등과 세력 다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1932년 작품은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범죄의 핵심 대상이 밀주다. 반면 1983년 작품의 중심에는 마약이 있다.
1932년작의 토니 카몬테를 연기한 폴 무니는 우크라이나 출신 배우다. 토니 카몬테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설정돼 있지만 이러한 배경은 영화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반면 1983년작에서 이탈리아계 미국인 배우 알 파치노가 연기한 토니 몬타나는 쿠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범죄자로 등장한다. 이 작품의 토니 몬타나는 알 카포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새로운 인물이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쿠바의 전직 정부 관계자 에밀리오 레벵가를 살해하면서 미국 범죄세계에 발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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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년작의 토니 카몬테(폴 무니·왼쪽)와 1983년작의 토니 몬타나(알 파치노). 시대적 배경과 인물 설정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권력과 성공을 향한 욕망으로 조직을 장악한 뒤 파멸에 이른다. (사진=영화 ‘스카페이스’ 화면 갈무리) |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인물 설정은 다르지만 이야기의 골간은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어머니는 토니가 건네는 돈을 ‘더러운 돈’이라며 거부한다. 토니가 여동생에게 보이는 지나친 간섭과 집착도 파멸을 불러온다. 조직 안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결국 기존 보스를 제거한 뒤 조직을 장악한다는 점도 같다.
그러나 주인공이 범죄에 빠져드는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1983년작의 토니 몬타나는 빈곤한 이민자의 생존 욕구와 성공에 대한 갈망에서 출발한다. 반면 1932년작의 토니 카몬테는 처음부터 권력을 차지하려는 야심과 개인적 욕망이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1983년작의 토니 몬타나는 청부살인까지 맡지만, 폭탄을 설치한 차량에 어린아이와 아이의 어머니가 탄 것을 보고 암살을 거부한다. 범죄자이면서도 자신만의 마지막 원칙은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마약에 찌들어 판단력과 통제력을 잃은 그는 점차 처참하게 무너져간다.
1983년 작품의 결정적인 인물은 볼리비아의 마약왕 알레한드로 소사(Alejandro Sosa)다. 그는 실존했던 마약왕 로베르토 수아레스 고메스를 모델로 한 인물로,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배후이자 최종적인 적으로 등장한다.
처음 소사는 토니에게 마약 공급을 맡긴다. 토니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자 그를 마이애미 최고의 마약상으로 성장시킨다. 소사의 지원을 받은 토니가 조직을 급속히 확장하자 기존 보스인 프랭크는 그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토니는 프랭크의 여자였던 엘비라와 결혼하고, 자신을 제거하려던 프랭크를 오히려 살해한 뒤 조직까지 차지한다. 그러나 소사와 손잡고 조직을 장악한 토니는 막대한 돈과 권력을 감당하지 못한다.
소사는 자신의 마약사업을 폭로하려는 언론인을 제거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토니는 암살 대상의 차량에 어린아이와 가족이 함께 탄 것을 보고 실행을 거부한다. 결국 소사는 대규모 병력을 보내 토니의 조직을 파괴하고 그를 제거한다.
두 작품에서 토니가 파멸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다르다. 그러나 권력과 욕망을 통제하지 못해 내부에서부터 붕괴한다는 점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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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년작 ‘스카페이스’에서 토니 카몬테(폴 무니)가 기관단총을 겨누고 있다. 기존 보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세력을 무리하게 확장한 토니는 결국 내부 붕괴와 파멸을 맞는다. (사진=영화 ‘스카페이스’ 화면 갈무리) |
지금의 정치 상황에 견주어볼 때 특히 주목할 작품은 1932년작이다.
남부 경쟁조직의 보스 루이 코스틸로(Louis Castillo), 이른바 ‘빅 루이’를 토니에게 살해하도록 명령한 인물은 자니 로보(Johnny Lovo)였다. 자니 로보는 남부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루이를 제거하라고 지시하면서도 북부지역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며 모든 일에는 타이밍과 순서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토니 카몬테는 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그는 남부의 자니 로보 자리만 노린 것이 아니라 북부의 밀주지역까지 공격한다. 기존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 한다.
토니의 파멸은 상징적이면서도 실제적이다. 지나친 소유욕과 통제욕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부하이자 친구인 기노 리날도를 직접 죽인다. 그 과정에서 하나뿐인 여동생 프란체스카마저 잃는다.
1932년작과 1983년작의 가장 큰 차이는 파멸의 마지막 방아쇠를 누가 당겼느냐에 있다. 1932년작에서는 공권력이 토니를 무너뜨리고, 1983년작에서는 더 거대한 범죄조직이 그를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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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3년작 ‘스카페이스’에서 토니 몬타나와 ‘The World Is Yours’ 조형물이 등장하는 장면. 세상을 차지하려 했던 토니의 끝없는 욕망은 결국 자신과 조직의 파멸로 이어진다. (사진=영화 ‘스카페이스’ 화면 갈무리) |
그렇다면 이 영화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직 안에서 원칙과 가치를 지키고 무리한 확장을 자제했다면 토니는 파멸에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단기간의 이익에 급급해 원칙과 가치를 저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세력 확장에만 골몰했다. 배신도 서슴지 않았다.
권력과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했지만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조직과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부에서부터 스스로 붕괴했고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무너뜨렸다.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욕망이 계속 팽창하면 조직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내부가 무너진 조직은 외부의 작은 공격에도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스카페이스’가 오늘의 정치권에 던지는 경고도 여기에 있다.
외연 확장에 앞서 먼저 집안을 제대로 챙기고, 조직의 원칙과 가치를 굳건히 다져야 한다. 탄탄한 내부를 바탕으로 외연을 자연스럽게 넓혀가는 것. 그것이 조직과 권력을 오래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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