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두 사람의 가족을 대상으로 한 수사 방식과 강제수사 범위를 둘러싼 형평성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자녀의 허위 스펙 의혹에 대한 수사를 반대하는 이들은 이미 무혐의 처분된 사안이기 때문에 근거 없는 정치적 공세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정치 보복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당사자는 “오로지 정치 보복을 위해 상관도 없는 자녀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심지어 ‘망상’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는 핵심 근거는 경찰이 2023년 12월 28일 11개 세부 혐의에 대해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시 경찰 수사가 적절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재수사 요구가 단순한 정치 공세나 정치 보복인지, 아니면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당한 문제 제기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 당시인 2022년 5월부터 1년 8개월 동안 진행된 ‘한동훈 딸 의혹’ 수사에서는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았고, 압수수색 영장이 신청조차 되지 않았다. 조국 가족에 대한 압수수색은 90여 차례에 이르렀다고 알려졌지만, 한동훈 자녀의 허위 스펙 의혹과 관련한 압수수색은 0건이었다.
소환조사 역시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고발인은 6차례나 불러 조사했지만, 피고발인에 대한 대면조사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동훈의 배우자에 대해서만 한 차례 조사가 진행됐는데, 이마저도 서면조사에 불과했다. 사실상 고발인에 대한 조사에 치중한 셈이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국정감사에서 이러한 수사 방식에 대해 “일상적이지는 않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수사 과정이 적절했는지, 수사 외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해외 학술지와 대학, 플랫폼에 관련된 사안이 많아 국제 공조수사가 중요했다. 그런데 2022년 11월 국제 형사사법공조 요청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에서 법무부로 전달되지 않고 반려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러한 수사 과정의 적정성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한 고발 사건도 접수돼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법무부 장관의 재직 상황이 수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없는지,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개입이나 소극적인 대응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 때와는 판이한 행태였다.
구체적인 의혹들을 살펴보자. | ▲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논문 ‘국가부채가 중요한가? 경제이론에 입각한 분석’의 문서 속성 화면. 작성자 항목에 ‘Benson’이라는 이름이 표시돼 논문 대필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자료화면) 우선 논문 대필 의혹이다. 케냐 출신 대필 작가로 알려진 벤슨이 한동훈 딸의 논문을 대신 작성했다는 의혹으로, 학회 등의 업무방해 여부까지 쟁점이 된 사안이다.
해외 학술지 등에 게재된 논문의 문서 정보(메타데이터)에 케냐 출신 대필 작가로 알려진 ‘벤슨(Benson)’의 이름이 표기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경찰이 이 자료를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관련해서 해외 학술지 논문 표절 및 게재 의혹도 있다. 기존 연구자의 논문 문장을 무단으로 복제하거나 짜깁기해 여러 편의 논문을 작성하고 국제 학회 논문집에 게재했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학회 측의 응답이 없어 충분한 심사 과정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혐의 입증도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만으로 수사가 충분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논문뿐 아니라 학술 에세이에서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됐다. 오픈 액세스 저널에 대리 작성하거나 표절한 에세이를 학술 사이트와 저널에 기고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미국 대학 입시 등에 활용할 목적으로 허위 스펙을 만들었다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만약 사실로 확인된다면 단순한 도덕적 문제를 넘어 관련 교육기관의 평가 업무를 방해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학회 논문이나 학술 에세이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전자책을 제작해 아마존 등에서 판매하는 과정에서 글을 표절하거나 무단 도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당사자 측과 경찰은 상업적인 목적이 없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2021년 아마존에 등록된 0.99달러짜리 수학 교재와 관련해, 아마존 홈페이지에 전자책 판매가의 35%를 인세로 지급하는 구조가 명시돼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경찰은 수익이 수수료로 지불돼 영리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실제 판매 및 정산 구조를 얼마나 면밀히 확인했는지는 의문이다.
박주민 의원이 지적했듯이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조차 경찰이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봉사활동 실적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 ▲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 중 띄운 화면. (국회의사중계시스템 영상 캡처) 고등학교 재학 기간과 관련해 2만 시간의 봉사활동 실적을 둘러싼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당사자 측은 개인의 봉사시간이 아니라 해당 단체 전체의 누적 봉사시간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단체 전체의 누적 봉사시간을 개인의 활동 실적으로 활용했다면 그 적절성을 따져봐야 한다.
451시간의 봉사활동 실적과 관련해서도 실제 활동 시간이나 기록의 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허위 기록이 확인된다면 관련 문서의 작성 경위와 사용 목적 역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업체가 후원한 노트북 50대를 개인이 기부한 것처럼 기재해 봉사·기부 실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러한 활동 실적은 단순히 이력에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 포상과도 연결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인천시의장상 등 외부 상에 응모해 수상한 만큼, 해당 실적의 진위와 포상 심사 과정의 공정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했다며 국내외 경연대회에 출품한 모바일 앱 역시 외부 전문 개발업자에게 대가를 지급하고 제작을 맡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제작 주체와 출품 과정에서의 설명이 달랐다면 대회 심사의 공정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경찰은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실제 입시 활용 여부와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실제 입시에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허위 스펙 작성이나 부당한 수상 과정에서 별도의 위법행위가 있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법적 책임과 별개로 교육의 공정성과 윤리적 책임 역시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허위 스펙 의혹에 대한 재수사 요구를 무조건 정치 공세나 정치 보복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공정한 수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확인된다면 관련 대학 역시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검토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업무방해 혐의에만 한정해서 바라보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부당한 논문 게재나 입상, 입학은 누군가의 정당한 기회를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이 부당하게 게재됐다면 다른 연구자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상을 받았다면 정당한 수상 기회를 얻어야 할 사람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입학은 더욱 민감한 문제다. 열심히 노력하고 충분한 능력을 갖춘 학생이 불공정한 경쟁으로 인해 불합격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문제는 젊은 세대와 학부모들에게 깊은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수사 과정에서는 최소한의 형식적 공정성이라도 갖춰야 한다. | ▲ 2022년 4월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한동훈. (사진=연합뉴스) 조국 전 장관 가족 수사 때는 90여 차례에 이르는 압수수색이 이뤄졌다고 알려졌고, 국제 공조수사까지 진행됐다. 그 과정은 연일 방송과 온라인을 통해 보도됐다. 당시 조국은 현직 법무부 장관이었다.
하지만 한동훈의 법무부 장관 재직 기간을 포함해 진행된 자녀 관련 수사는 판이하게 달랐다. 압수수색 영장 신청은커녕 대면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국내 11곳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는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기관이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확인이 충분히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국제 공조가 중요한 사안이었음에도 관련 요청이 법무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의혹 역시 해명돼야 한다.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감추듯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사기관뿐 아니라 언론과 대학가의 태도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국 전 장관 가족 수사 당시 쏟아졌던 비판과 비교하면 한동훈 자녀 의혹에 대한 사회적 검증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공정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수사 형평성 논란부터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
| ▲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1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대상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10.12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12일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새 사실관계가 드러나면 전면 재수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제기된 의혹과 당시 수사 과정의 적절성만으로도 재검토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경찰이 과거 검찰과 다른 수사기관이라는 점을 이번 사건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한동훈은 과거 “중요한 건 뭐냐면 국민들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돼”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그 말은 스스로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법무부 장관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정의·상식의 법치’가 진정한 원칙이었다면,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에도 동일한 공정성의 기준이 적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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