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박사
codesss@naver.com | 2026-11-01 00:01:36
영화 ‘암살자(들)’에 이어 드라마 ‘닥터 X’를 둘러싸고 과도한 행위들이 반복되고 있다. 두 작품은 장르와 소재는 다르지만 한국 현대사를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드라마 제작진과 배우에게까지 압박이 가해지는 현실은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당시와 비교할 때 역사적 퇴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송지나 작가가 집필하고 김종학 감독이 연출한 ‘모래시계’는 5·18 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당시에는 5·18이 발생한 지 15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신군부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와 사법적 심판이 본격화하던 때였다.
방영 당시 신군부 인사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방송 시점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당시 안전기획부가 방송사에 무형의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래시계’는 끝까지 방영됐고, 최고 시청률 64.5%라는 기록을 세웠다. 단순한 흥행을 넘어 국민적 각성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분노에 잠이 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반응이 PC통신을 장식했다. 드라마는 신군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 형성에도 기여했고,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넓혔다.
그런데 2026년, 5·18을 다룬 드라마 ‘닥터 X’를 향해 방영 중단 청원과 민원, 정치적 압박성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주연 배우를 향해 인격 모독과 혐오 표현까지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30여 년 전 신군부 측이 ‘모래시계’에 가했던 압박을 떠올리게 한다. 오히려 그 수위가 더 심각하다는 점에서 역사적 퇴행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작품의 완성도나 역사적 재현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비판이 제작 중단을 요구하거나 규제기관의 권한을 동원해 창작 환경에 부담을 주는 수준으로 나아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예술 창작과 문화 향유에 관한 국민의 권리까지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닥터 X’에 5·18이 등장하는 것이 뜬금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주인공 계수정(김지원)은 세계 분쟁지역을 돌며 의료봉사를 해온 인물이다. 전쟁과 분쟁 속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그런 계수정이 마주하는 환자가 오상범(하성광)이다. 오상범은 어린 시절 광주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으로 머릿속에 총알이 박힌 채 살아남았고, 이후 환청과 환상, 극심한 두통에 시달려온 인물이다.
계수정에게 오상범은 자신이 분쟁지역에서 마주했던 어린 생존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다. 다른 나라의 전쟁터에서 목격했던 민간인의 고통이 우리나라 현대사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환자의 삶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에피소드는 의료 드라마의 본질과 동떨어진 설정이 아니다. 오히려 남들이 외면하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계수정의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의료 드라마가 사회적·역사적 사건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점을 돌아볼 수는 있어도, 이를 다뤘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서 헬기 사격은 중요한 역사적 쟁점이다.
신군부는 광주에서의 무력 진압을 폭도들에 대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헬기 사격은 단순한 현장 대응이 아니라 조직적인 무력 사용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 시사타파NEWS.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