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기자
ljw777666@gmail.com | 2026-01-30 18:00:30
국민의힘이 한동훈을 제명한 날, 표면에 떠오른 장면은 ‘극한 내분’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사태는 단순한 파열음이라기보다 보수 진영 권력구조 재편의 전조로 읽힌다. 겉으로는 한동훈이 가장 큰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축출’은 때로 새로운 서사의 출발점이 된다. 이번 사태가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면 명확하다. 한동훈 제명 국면의 최대 수혜자는 이준석이고, 가장 큰 정치적 비용을 떠안게 된 인물은 장동혁이다.
왜 수혜자는 이준석인가...“갈 곳 없는 당원들의 이삭 줍기”
한동훈을 지지해온 이른바 ‘위드한동훈’ 성향의 당원과 지지층은 더 이상 국민의힘 내부에서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이 극우 성향 정당이나 아스팔트 정치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 동의했거나, 최소한 강경 보수 노선과는 결이 다른 층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원내 정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탄핵 동의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가진 개혁신당,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이준석이다.
당장 ‘한동훈이 개혁신당으로 간다’는 시나리오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인물보다 지지층이 먼저 움직인다. 한동훈이 아무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의 지지 기반은 이동할 수 있다.
이번 제명 국면은 이준석에게 하나의 ‘정치적 둥지’를 제공했다. 개혁신당의 당원 증가 여부나 여론조사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정치에서 흐름을 쥐는 순간, 무게중심은 서서히 이동한다.
한동훈은 정말 ‘피해자’인가...'제명'이 만든 새로운 서사
정치인은 서사가 있어야 한다. 특히 리더로 성장하려면 더욱 그렇다. 한동훈에게는 그간 “특수부 검사”, “윤석열의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정치 경험이 짧고, 스스로 축적한 정치적 서사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제명 결정은 그 빈자리에 새로운 서사를 덧씌운다. 정치에서 반복돼 온 ‘탄압 서사’다. 강한 배제는 역설적으로 지지층 결집을 부르고, 인물의 체급을 키운다.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있던 인물이 ‘과도한 조치의 피해자’로 재정의될 여지가 생긴다.
특히 “제명까지는 과했다”는 인식이 보수 내부를 넘어 중도층 일부로 확산될 경우, 한동훈은 더 이상 ‘윤석열의 검사’가 아니라 ‘정치적 탄압을 받은 인물’로 인식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결정이 그의 정치적 몸값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대 피해자는 장동혁...그가 떠안게 된 정치적 비용
현재 당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동혁의 입지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한동훈이 당 안에 있을 때는 갈등의 초점이 분산됐지만, 그가 제거된 이후 갈등은 한 지점으로 수렴되고 있다.
정치에서 ‘정리’는 종종 다음 대상을 예고한다. 한동훈 이후 자연스럽게 “다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그 중심에 장동혁이 놓이게 된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현 체제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지방선거는 사실상 장동혁 체제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살아남기 위해 장동혁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윤석열·극우 진영과 거리두기를 시도해야 하지만, 동시에 ‘배신’ 프레임의 역풍을 감수해야 한다. 단절하지 못하면 중도 확장과 선거 승리는 불가능하다. 어느 쪽이든 치명상이다. 이 지점에서 장동혁은 가해자라기 보다, 정리의 비용을 가장 크게 떠안은 최대 피해자에 가깝다.
오세훈의 ‘장동혁 사퇴’ 직격, 왜 지금인가
오세훈의 공개적 사퇴 요구는 감정적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 서울시장 선거라는 보수 진영 최대 전장을 앞두고, 국민의힘이라는 간판 자체가 부담이 되는 상황을 관리하려는 정치적 판단으로 읽힌다.
오세훈은 조직, 자금, 창당 경험이라는 정치적 생존 기술을 갖춘 인물이다. 반면 한동훈은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만 조직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구도 속에서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 가능성을 염두에 둔 계산이 작동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장동혁 체제가 흔들릴수록, 당 밖의 이준석과 당 밖으로 밀려난 한동훈 지지층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판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의 최선의 선택은 ‘움직이지 않는 것’
제명 이후 한동훈의 행보를 두고 법적 대응, 보궐선거 출마, 신당 창당 등 온갖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는 많지 않다.
당장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은 갈등을 장기화할 뿐 아니라, 결과에 따라 “제명은 정당했다”는 정치적 판단을 확정짓는 위험을 안고 있다. 무소속 출마는 곧바로 ‘보수 분열의 상징’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크다. 신당 창당 역시 조직과 자금, 동반 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렇게 하나씩 가능성을 지워보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직접 움직이지 않고 ‘과도한 제명의 피해자’ 프레임을 유지하며 지지층의 자연스러운 결집을 지켜보는 전략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동훈은 끝까지 피해자로 남는다.
결정적 시점은 6월 지방선거 이후다.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 지도부 교체와 함께 보수 재편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 국면에서 기존 당적과 징계는 정치적 효력을 잃을 수 있다. 그때 한동훈은 ‘제명된 인물’이 아니라 새로운 판에 합류하는 상징적 존재가 된다.
언론은 이번 사태를 ‘국힘 내분’, ‘자멸’로 규정한다. 그러나 지금의 혼란은 파괴라기보다 정리 과정일 가능성이 크다. 갈등 요소가 제거되고, 선거 이후 지도부가 재편되면 보수 진영은 “더는 이렇게 갈 수 없다”는 명분 아래 다시 통합을 시도할 것이다.
정치는 언제나 마지막에 정리한다.
그리고 정리 이후에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다.
한동훈 제명은 끝이 아니다.
보수 정치의 ‘판 갈이’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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