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위원
sstpnews@gmail.com | 2025-11-16 09:00:27
수능이 끝난 지 사흘, 주말의 공기는 조금 느슨해졌지만 마음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긴장으로 얼어붙었던 교정은 잠시 평온을 되찾았지만, 청소년들의 어깨 위에는 여전히 점수와 등급, 대학이라는 단어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한 번의 시험이 남긴 흔적은 주말의 휴식보다 오래가고, 한국 교육의 구조적 문제는 시험이 끝났다고 함께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왜 여전히 이 시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13일 2026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전국 85개 시험지구 1,310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오전 8시 40분부터 시작된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은 10시에 종료됐다. 이어 2교시 수학영역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2시 10분까지 100분 동안 진행됐다.
이번 수능에는 전년보다 3만 1,504명 늘어난 총 55만 4,174명이 지원해, 총 응시자 수로는 2019학년도(59만 4,924명)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았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수능 역시 문·이과 구분 없이 국어와 수학 영역에서 공통과목을 응시하고 선택과목 중 1개를 골라 시험을 보았다.
해마다 전국 고3 수험생과 검정고시 합격자, 그리고 재수생이 치르는 시험인 수학능력고사(修學能力)는 이름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하지만 이런 시험을 계속 치르는 것이 AI 시대,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융복합적 사고력을 갖춘 인간, 경쟁력 있는 인간을 길러낼 수 있을까?
50년 동안 무려 38번이나 바뀐 입시제도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자지 않고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는 어느 고등학교 학급 교육목표가 시사하듯, 학벌사회에서 입시제도는 대학별 단독시험제, 대학입학 연합고사제, 대학별 단독시험제,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 등 파격적으로 바뀌어 왔다. 그러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 해방 이후 지금까지 수능은 ‘신분 상승의 기회’이자 ‘수험생에게 등급 라벨을 붙이는 시험’이었다.
수능일이 되면 관공서뿐 아니라 일부 민간 기업들도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춘다. 1분 1초 차이로 수억 달러가 오가는 금융시장 역시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오전 10시에 개장했다. 영어듣기 시간이 되면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수능 당일, 교육부는 물론 국토교통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등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총동원된다. 심지어 일반 기업과 전국은행연합회까지 동참하고, 수험생의 지각이나 수험표 분실 등 돌발 상황을 대비해 수만 명의 경찰과 소방 인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단 하루,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갈리는 나라
고등학교 3년, 아니 초·중등 12년간의 공부는 이 하루,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운명이 결정된다. 수능은 무너진 학교, 사회 양극화, 가정파괴, 학교폭력, 탈학교, 청소년 자살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수능이 우리 사회 구조적 모순의 원인을 제공해왔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교육은 뒷전이고 진학을 위한 문제풀이 전문가를 양산하는 학교, 학교에서는 잠자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현실,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은 사라지고 SKY 입학생 수로 학교의 ‘서열’이 정해지는 현실 속에서 수능은 핵심 축을 담당해왔다.
정치인, 지식인, 교육학자, 교사, 학부모 모두 이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수능은 헌법·교육기본법·교육과정이 추구하는 교육 목적을 온전하게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만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시험도 아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성적을 좌우하는 시험이며, 배분의 정의가 실현되는 공정한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의 가치까지 서열매기는 수학능력고사
문제 난이도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지고, 학교·교사 간 역량 차이를 덮어둔 채 12년의 교육을 단 하루 평가로 서열매기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1회의 시험으로 수험생의 고통은 물론 가족의 희생을 보상해 주기는커녕, 청소년들의 삶을 앗아가고 탈락자들을 양산해왔다. 가정파괴, 사교육 과열, 실망·좌절·열패감, 그리고 운명론 속에 수십만 청소년을 몰아넣었지만, 교사·교육기관·학부모 모두 이처럼 당연시하는 이상한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한국의 학생들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들”이라고,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고통스러운 교육”이라고 평가했다. 스웨덴의 한 신문 역시 “한국의 PISA 성적은 세계 최고지만, 아이들은 꿈꿀 시간이 없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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