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기자
ljw777666@gmail.com | 2026-01-22 15:12:02
한덕수에게 징역 23년이 선고된 1월 21일 판결은 단순한 중형 선고에 그치지 않는다. 이 판결이 역사에 남는 이유는 형량이 아니라, 이진관 판사가 ‘내란’을 어떻게 규정했는가에 있다.
이진관 판사는 일회성 강단이나 정치적 판단으로 주목받는 법관이 아니다. 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사건 등에서 검찰의 무리한 서사와 조작적 기소를 법정에서 하나씩 걷어내며, 사건을 정치적 프레임이 아니라 증거와 구조로 판단해 온 인물이다.
이번 판결 역시 한 개인의 범죄를 넘어,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흔든 사태의 성격 자체를 법적으로 다시 정의했다.
■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규정이 만든 분기점
이 판결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이번 사태는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규정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내란은 전두환·노태우의 군사반란처럼 이해돼 왔다. 군을 장악해 권력을 탈취하는 방식, 탱크와 계엄군이 먼저 움직이는 쿠데타형 내란 말이다. 실제로 당시 법원은 군사반란과 내란을 인정했고, 노태우에게 최종적으로 징역 17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진관 판사는 이번 사태를 그 연장선에 두지 않았다. 이미 권력을 쥔 상태에서 헌법과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며 권력을 연장·강화하려 한 시도는 과거의 군사반란과 성격이 다르며,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전례를 부정한 판결이 아니라, 내란 개념을 한 단계 확장한 판단이다. 쿠데타만이 내란이 아니라, 권력자가 국가 시스템을 동원해 헌정질서를 압박하는 행위 역시 내란이라는 점을 법원이 처음으로 분명히 한 것이다.
■ 결과가 아니라 의도와 구조를 판단한 판결
이 판결이 명판결로 남는 두 번째 이유는 결과가 아니라 의도와 구조를 중심에 놓았다는 점이다. “6시간 만에 끝났다”, “경고성 조치였다”, “큰 피해가 없었다”는 주장은 모두 결과론이다.
이진관 판결은 질문을 바꿨다. 성공을 기대했는가, 그리고 그 기대 속에서 가담했는가. 판결이 “성공을 기대하고 가담했다”고 명시한 순간, 이 사건은 우발적 혼란이 아니라 계획된 헌정질서 침해 시도로 규정된다.
이는 개인의 고의 여부를 넘어, 누가 어떤 성공을 상정했고 그 성공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묻게 만든다. 내란을 개인의 일탈이나 판단 착오로 축소하려는 모든 시도를 법리적으로 차단한 셈이다.
■ ‘경고성 계엄’ 프레임을 법정에서 퇴출시켰다
세 번째로 이 판결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경고성 계엄’이라는 말장난을 법정에서 퇴출시켰다는 데 있다. 판결은 내란이 6시간 만에 끝난 이유를 권력자의 결단에서 찾지 않았다. 내란을 끝낸 주체는 국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무장한 공권력 앞에 맨몸으로 섰던 시민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그 6시간은 종료가 아니라 지속의 출발이었을 가능성을 법정은 외면하지 않았다.
이 판단은 감정적 수사가 아니라, 내란의 종료가 ‘자의적 종료’가 아니라 ‘좌절’이었다는 법적 평가다. 이 지점에서 ‘경고성’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의견이 아니라 왜곡이 된다.
■ 한덕수 동정론이 지워버리는 책임의 구조
이 판결 이후 경계해야 할 것은 한덕수 개인에 대한 동정론이다. 고령, 건강, 가족 사정은 형사사법에서 참작 요소가 될 수는 있어도, 헌정질서를 유린한 범죄의 본질을 흐리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특히 한덕수는 윤석열 탄핵 이후 헌정질서 회복 국면에서 중립적 관리자가 아니라, 공권력과 헌법기관의 정상 작동을 지연·차단하며 사태를 끌고 간 핵심 행위자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사안을 개인의 비극이나 노인의 말년 문제로 축소하는 순간, 내란은 구조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가 되고 책임은 흐려진다. 판결이 ‘위로부터의 내란’을 규정한 이상, 동정론은 책임의 구조를 지우는 또 다른 방식의 왜곡일 뿐이다.
■ 이 판결은 끝이 아니라 기준이다
이진관 판결은 동시에 향후 진행될 이상민·박성재 등 관련 재판에 하나의 기준점을 남겼다. 이 판결이 다른 재판의 결론을 미리 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후 재판들이 더 이상 사건을 단편적 행위나 개별 판단 착오로만 다루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규정, 성공을 기대한 가담이라는 판단, 국민에 의해 좌절된 헌정 침해라는 인식은 이후 재판에서 지시·동조·방조의 연결 구조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판결은 결과를 예단하지 않으면서도, 질문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래서 이 판결은 끝이 아니라 기준이다. 위로부터라면 위는 어디까지였는가, 성공을 기대했다면 그 성공의 그림은 누가 그렸는가, 국민이 막아냈다면 국가는 왜 그 순간 작동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들은 이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법원이 공식적으로 던진 역사적 질문이 됐다. 이진관 판결이 명판결로 남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형량이 아니라 문장으로, 사건이 아니라 기준으로 남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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