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의 시대는 끝났다...'충성'아니라 '헌법 준수' 맹세해야 한다 [김용택칼럼]

나라의 주인이 왜 국기에 충성맹세를 해야 하는가...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김용택 위원

sstpnews@gmail.com | 2025-10-12 09:00:36

▲ 학교 내 일장기. 창원교육지원청, 100년 초등학교 사진·독립운동가 학적부 공개 2021.8.11 (제공=연합뉴스)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께 충의를 다합니다. 우리들은 인고단련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초등학생들이 애국조회 때 강요받았던 황국신민서사의 내용이다.

‘충성(忠誠, allegiance)’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참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지만, 실제로는 ‘국가나 군주, 단체 등에 대해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행위’를 뜻한다. 즉, 복종과 복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외우는 맹세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 문구는 1968년 충남교육청 유종선 장학계장이 작성해 시행한 이후, 박정희 정권이 전국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후 약간의 수정 끝에 1984년 대통령령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으로 법제화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대한민국 임시헌법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함' (사진=연합뉴스)


국기에 충성을 다짐해야 하는가

헌법 제1조는 분명히 말한다.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즉,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렇다면 주권자인 국민이 왜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가? 충성의 대상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한다’는 표현은 논리적으로나 어법상으로도 모호하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충성’을 다짐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헌법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유신시대의 잔재인가

국기에 대한 맹세는 수차례 문구가 수정되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충성’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가 국민이라면, 충성의 대상은 태극기가 아니라 헌법과 민주주의 가치여야 한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아니라면 충성을 거부해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한 학생은 “종교적 신념상 국기 경례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이유로 고교 입학이 거부되었다. 1973년에는 김해여고 학생 6명이 같은 이유로 제적을 당했다. 대법원은 “학교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며 학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결은 국가가 여전히 ‘충성’을 강요하는 체제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쌍산 김동욱씨가 헌법 1조1항을 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8.7.16 (사진=연합뉴스)
식민지의 유산은 여전히 남아 있는가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들은 천황 폐하께 충의를 다합니다.”
 

이 황국신민서사는 일제의 대표적인 충성 맹세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 ‘국군의 맹세’, ‘국민의례’는 그 구조가 놀랄 만큼 유사하다. 단어 몇 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 국가의 방식이다.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던 식민지의 논리를,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답습한 셈이다.

국가가 왜 국민에게 ‘충성’을 강요해야 하는가? 애국심은 강요로 생기지 않는다.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적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는 한, 국기에 대한 맹세는 애국이 아니라 복종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민주주공화국답게...바꿔야할 때

국기에 대한 맹세는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 국가가 ‘충성’을 요구할수록 국민의 자유는 위축된다. 이제는 바꿀 때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아니라, 헌법에 대한 다짐으로.


“나는 헌법을 존중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공화국 국민의 맹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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